서울 중구는 대한민국 근현대의 발자취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걸으면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거리를 거닐다 보면 곳곳에서 근현대의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녀와 서울 종로구, 중구를 거닐다 보면 멋진 서울 종로구, 중구의 풍경에 반하게 될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이곳의 매력에 빠져 토요일이면 아침 먹고 출발을 하여, 종로구나 중구의 이곳저곳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그 중 의도하지 않게 만나게 된 곳이 바로 ‘홍난파 가옥’과 ‘딜쿠샤’입니다.
홍난파 가옥
위치: 서울 종로구 송월1길 38(홍파동 2-16)
1. 우리가 잘 아는 ‘고향의 봄’, ‘봉선화’의 작곡가 홍난파는 한국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실내악단 창시자, 최초의 음악평론가, 최초의 음악잡지 발행인인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입니다.
2. 홍난파의 집은 경희궁자이 아파트 뒤편 언덕에 예쁘고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집 앞에는 홍난파의 흉상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너무 예쁘게 나올 만한 집입니다.
3. 이 집은 1930년 독일 선교사가 지은 벽돌조 서양식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1층의 규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근대의 서양식 가옥이 어떤 형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홍난파는 1934년에 가수 이대형과 재혼하며 결혼생활을 위해 홍파동 집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4. 홍난파는 1944년 작고할 때까지 여기서 살았고, 이 집에서 자신의 대표곡 가운데 상당수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5. 홍난파의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현재는 홍난파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6. ‘고향의 봄’을 가족과 함께 불러보고 싶은 곳입니다.
"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딜쿠샤
‘딜쿠샤’는 그 존재를 알고 방문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지인의 추천으로 ‘능라밥상’이라는 음식점의 평양식 냉면을 먹으러 방문했다가 음식점 앞에 있는 예쁜 집, 그리고 ‘딜쿠샤’라는 이국적이면서 신기한 이름을 보고 방문하게 된 곳입니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1923년, 마침내 내가 완성됐어.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지.
산 아래 마을 사람들도,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도 나를 구경하러 왔단다.
메리는 내게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한다 하더구나.
-<딜쿠샤의 추억(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 김세미, 이미진, 찰리북
1. 이 집의 이름은 ‘딜쿠샤’입니다. 기쁨의 집, 희망의 궁전이라는 뜻입니다.
이 집은 광복 이후 누구의 집인지, 언제 지었는지, 누가 살았는지 베일에 가려진 채,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6.25 전쟁 중에는 피난처로, 전쟁 뒤로는 공동 주택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주인이 없는 집이 이렇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소득층 12세대가 거주해 오다가, 이 가옥의 주인과 역사적 의미를 알게 된 이후 주게 세대를 이주시키고 복원 과정을 거쳐 2021년 3월에 지금이 모습(이 집의 주인이었던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 부부가 아들 브루스와 함께 살던 아름다운 공간)으로 개관했습니다.
<영화같은 이야기>여서 글이 깁니다. 아이와 이 글을 꼭 다 읽고 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전시실의 영상은 자녀와 꼭 보시길 바랍니다. 아래 '딜쿠샤'의 영화같은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 영상입니다.
2. ‘딜쿠샤’ 이야기(우리문화신문, 우지원 기자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함)
이 집의 본래 주인은 테일러 부부입니다. 앨버트 테일러 가옥으로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지상 2층 규모의 서양식 주택으로, 대한제국 및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하던 미국의 기업인 겸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린리 테일러가 살던 곳입니다.
인도에서 결혼하고 한국에 정착한 두 사람은 한 마을에서 커다란 은행나무를 발견하고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 멋진 나무 아래 우리 집을 짓고 싶다는 아내의 소망대로, 앨버트 테일러는 은행나무 옆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그 밑에 성경의 시편 126장 1절을 새겼습니다.
‘건축가가 집을 지어도 하느님이 짓지 않으면 헛되고
파수꾼이 성을 지켜도 하느님이 지키지 않으면 헛되도다.’
이 구절이 지켜준 덕분이었는지, AP 통신 특파원이던 앨버트는 독립운동을 물심양면 도우면서도 비교적 화를 입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 가족과 한국의 인연은 특별했습니다. 마치 누가 계획한 것처럼 아들 브루스는 1919년 2월 28일, 3.1만세운동 하루 전날 태어났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브루스를 낳은 메리가 앨버트를 기다리고 있을 때, 병실로 뛰어 들어온 간호사들이 메리의 침대에 종이 뭉치를 숨기고 황급히 사라졌습니다. 뒤이어 들이닥친 일본 경찰들이 병원을 수색했지만, 숨겨진 종이 뭉치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 종이뭉치는 바로 ‘3.1 기미독립선언서’였습니다. 앨버트는 재빨리 동생 빌을 불러 ‘3.1독립선언서’를 신발 뒤축에 숨겨 한국을 빠져나가게 했고, 이로써 전 세계신문에 한국의 ‘3.1독립선언서’가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실릴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미국 연합통신(Associated Press)의 임시특파원으로 3·1운동 독립선언서를 나라 밖에 가장 먼저 타전한 사람이 ‘달쿠샤’의 주인 앨버트 W.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입니다.
세월이 흘러 스물한 살이 된 아들 브루스는 1940년 어느 날,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딜쿠샤를 떠났습니다. 전쟁으로 미국과 일본의 갈등이 고조되자 미국인 신분으로 일본의 간섭을 덜 받던 앨버트도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딜쿠샤에 홀로 남은 메리 테일러는 일본 경찰의 조롱과 감시를 받으며 가택 연금을 당했고, 개 사료로 죽을 쑤어 먹으며 열악한 상황을 견뎠습니다. 그래도 이때 이웃에 사는 한국인들이 문밖에 달걀이며 꿩이며 식량을 가져다 놓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앨버트는 체포된 지 6달 만에 겨우 돌아왔습니다. 아들 브루스가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뒤 소식이 끊긴 상황이었지만, 일본 정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은 테일러 부부는 결국 수십 년 동안 정들었던 딜쿠샤를 떠나 미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것이 앨버트에겐 마지막 딜쿠샤의 모습이었다.
(p.31)
“우린 추방당한 다음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았어. 매일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 앨버트는 태평양 너머에 자기 나라가 있고, 자기 집이 있다고 늘 얘기했단다. 그러면서 만약 자기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죽거든자기의 재를 한국 땅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지. 힘들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을 잡았는데......앨버트는 그날을 얼마 앞두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단다. 난 앨버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어렵게 한국으로 떠나는 미국 군함을 얻어 탔어. 그리고 저 아래 한강이 보이는 양화진 묘지에 앨버트를 묻었지.”
-<딜쿠샤의 추억(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 김세미, 이미진, 찰리북
부부가 떠난 뒤에도 딜쿠샤는 꿋꿋이 살아남았습니다. 한국전쟁의 포화, 1960년대 개발 열풍… 그 모든 굴곡진 현대사를 오롯이 버텨낸 딜쿠샤가 대한매일신보 사옥이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역사가와 건축가들이 집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집에 새겨져 있는 ‘DILKUSHA 1923’이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3. ‘딜쿠샤’의 값진 의미
(p.46)
“어머니는 이 집이 우리 가족의 희망의 궁전이 되길 바랐던 것처럼, 오래도록 한국인들의 희망의 안식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씀하셨지.”
-<딜쿠샤의 추억(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 김세미, 이미진, 찰리북
테일러와 메리 부부의 딜쿠샤가 잊혀 가던 중 아들 브루스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을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소유권이 몇 번이나 바뀌고 국가 소유가 되었지만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릴 만큼 방치되었던 집에서, 한국 전쟁 후 집 없는 많은 사람들이 버려진 딜쿠샤의 공간을 쪼개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딜쿠샤의 얘기를 듣고, 2006년 66년 만에 딜쿠샤를 찾은 브루스는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집이 그동안 어려운 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어 감사해했습니다.
이후 서울시는 딜쿠샤의 복원 및 재현 프로젝트에 돌입했고, 2018년부터 시작한 복원 작업 끝에 역사전시관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2016년 2월 28일, 브루스의 손녀 제니퍼는 일 년 전 세상을 떠난 브루스의 재를 커다란 은행나무 밑동에 뿌렸습니다. 단란했던 한 가족의 ‘희망의 궁전’이자, 오랫동안 한국인에게 희망의 안식처가 되어준 딜쿠샤는 지금도 그 자리에 서서, 평온한 안식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궁전, 기쁨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딜쿠샤는 주인의 바람대로 주인이 떠난 후에도 그 이름의 값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키려고 했던 대한민국을 사랑한 테일러 부부의 용기와 마음은, 희망의 궁전, 기쁨의 집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주인의 바람대로 주인이 떠난 후에도 그 이름의 ‘값’을 하며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준 집이었습니다.
4. 영화같은 이야기
‘딜쿠샤’를 방문하고, 테일러 부부와 딜쿠샤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라다를까, 이 글을 포스팅 하고 있는 지금 검색해 보니, 2023년에 뮤지컬로 공연이 되었습니다.
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3(해설 사전 예약하는 곳)
근처 맛집
1. ‘능라밥상’을 추천합니다. 평양식 냉면이 주요리이고, 자녀가 냉면을 싫어한다면 참 맛있는 비빔밥을 추천합니다.
2. 주차
능라밥상 음식점에 딸린 주차장은 없지만, 근처에 공영주차장이나 주차를 세워둘 만한 곳이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이 평지가 아니고 꽤 높은 언덕길입니다. 놀라지 마세요(저희는 놀랬습니다^^)
3. 홍난파 가옥에서 딜쿠샤까지 도보로 가깝습니다. 홍난파 가옥-딜쿠샤-능라밥상/ 혹은 딜쿠샤-능라밥상-홍난파 가옥 정도의 루트로 가시면 편하게 체험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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